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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

1985년의 오락실(2008년 3월 4일 기록)

by viperHBK 2023. 9. 20.

내가 오락실에 출입하게 시작한 것은 1982년 겨울이었고 그것은 굉장히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었다. (1981년인 줄 알았는데 문페트롤의 제작년도를 보고 82년이었음을 알았다) 알고 지내던 동네 형을 어슬렁 어슬렁 따라갔다가 현재 관악구 신림동 난곡입구 쪽에 있는 광명오락실 - 이 오락실 매력적이지 못한 게임으로도 꽤 오래 버텼는데 결국 문 닫더군 - 의 위치에 있었던 이름 없는 오락실에 첫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최초로 한 게임은 남코의 렐리X이고 한 동안은 그냥 구경이나 하는 정도이다가 1983년에 나온 챔피언 베이스볼에 꽂혀서 정신을 못차렸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나는 완전 오락실에 미쳤는지 국민학생으로는 꽤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오락실이란 오락실은 다 들쑤시고 다녔고 그 보답으로 어머니의 사랑가득한 따스한 맴매를 듬뿍 맞았다. 그런 시절이었다. 오락실은 가면 안 되는 곳....

1980년대 초에는 아기자기한 게임들이 많았고 오락실을 주름잡는 게임은 단연 겔러그였다. 한 게임 당 50원 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100원을 받았으며 좀 여유있는 오락실이다 하면 벽 한 쪽을 몽땅 겔러그로 도배했으니까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 오락실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있었던 게임은 폼포코(너구리), 디그더그, 팽고, 푸얀, 타임 파일럿, 갤러그, 문페트롤, 동키콩, 프로그(프로그는 아닌가?)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로 챔피언 베이스볼의 폭풍이 지나가고 당시 난곡 최대의 오락실이었던 삐삐오락실에 '하이퍼 올림픽'이 들어오면서 구경조차 하기도 힘들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던 무렵 1985년이 왔고 오락실에는 약간의 변화가 오게 된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문교부에서 무슨 장난을 한 건지, 컴퓨터 교육 어쩌구 하면서 그 일환으로 오락실에 강제로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기판형 게임보다 훨씬 못한 그래픽에 조악한 음악으로 가득한 게임들이 오락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참고로 1985년이면 캡컴에서 건스모크를 발매한 해이다. 건스모크의 그래픽과 MSX1용 이얼쿵푸의 그래픽을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오락실의 암흑기였다 써글...

어쨌거나 그 시절 오락실을 차지한 컴퓨터는 모두 MSX였다. 정확하게는 대우 IQ1000이 대부분이었으며 일부는 당시 금성(현재 LG)의 FC-80이 있는 곳도 있었던 것 같다. 주된 메뉴는 다음의 게임들이었다.

코나미의 이얼 쿵푸. 오락실에서 돈 벌려고 그랬는지 주인공인 LEE는 3대만 맞으면 KO되도록 설정한 곳이 많았다. 이 게임의 메인 BGM(어차피 BGM이라봐야 하나 뿐이지만)은 이 세대의 사람에겐 매우 유명하며 랠리X의 메인 BGM과 함께 국내 가요에도 샘플링으로 쓰인 것으로 안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만 들으면 아마 대부분은 '아... 이 음악' 할 것이다.

코나미의 킹스벨리. 오락실에서는 왕의 계곡 내지는 왕의 묘로 소개된 게임이다. 아마도 이 암흑의 시절 최고의 히트작일 것이다. 한 사이클이 15스테이지로 되어 있으며 사이클을 돌면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형식이었다. 코나미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회시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캡컴에 열광하고 있을 때였다. 건스모크 때문이다.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당시의 게임이 대부분 코나미의 것이었는데 이 게임은 도시바 EMI의 것이었다. 게임은 지극히 단순하다. 걸어다니는 애들 밟아 죽이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락실에선 하진 않고 나중에 MSX를 실기를 소유한 후 해봤는데 뭐 나름 할 만하던데... (-_-)
제목은 쿵푸타이군(공부대군)이다.

코나미의 매지컬 트리, 요술 나무이다. 나무를 계속 올라가는 지극히 단순한 게임이지만... 난이도는 정말 거지같다. 이 게임은 1984년 작이다. 의외로 인기가 있었다.

코나미의 핑퐁, 당시 오락실이란 오락실은 전부 난이도를 최강으로 해놓아서 한 세트를 따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리 쪽이 지면 관중석 우측에 있는 팽귄이 뒤돌아서 질질 짠다. 써글...

뭐 대충 이 정도의 게임이었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게임들은 MSX용 카트리지 게임이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MSX 본체가 겉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카트리지가 슬롯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캐비넷 안쪽에 확장슬롯을 넣어놓고 거기에 몇 개의 게임을 꽂아넣은 형태가 아니었나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이면 다신 오락실 안 가....라고 다짐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하고 원래 오락실의 모양으로 회귀하였다. 다만 이후에 시간 제한 모델로 오락실에 MSX게임이 일부 들어오긴 했다. 그 게임들 중 대표적인 거 둘만 뽑으면 이 게임들이다.

바로 격돌 페넌트레이스와 F1 스피리트. 역시나 둘 다 코나미의 작품이다. 격돌 페넌트레이스는 일명 코나미야구로 불렸고 1988년 당시 궁극의 야구 게임인 스테이디움 히어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선전한 게임이다. 솔직히 스테이디움 히어로는 다양한 케릭터와 스페셜 멤버를 내세운 점은 특기할 만했지만 툭하면 홈런이요, 번트를 제외하면 땅볼이 전혀 없는 게임이어서 게임의 현실성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게임이었다. 어쨌거나 코나미 야구는 내 경우, 오락실에선 플레이하지 않고 나중에 MSX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팩을 입수하여 즐겼다. F1 스피리트의 경우는 오락실에서 친구와 2인용으로 종종 즐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그런 오락실 환경을 저주했었는데 새삼 되돌아 보니 그 당시의 난곡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어렸을 적 오락실이 있던 자리를 전부 사진으로 찍어 포스팅이나 한 번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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